수혁이 가지고 있는 양복은 대학 입학때 부모님이 사주셨던 한 벌이 다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급작스러운 장례식이 결정되자 마자 빌려야만 했다. 빌리는건 업체에서 해 주었다. 낯선 향의 빳빳한 상복을 입으며, 그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분명, 현실도피였다. 저번주까지는 살아있던 사람이, 이젠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는걸 인정할 수 없어서...어머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걸, 인정할 수 없기에.
빈소에는 많은 사람이 들리진 않았다. 죽음이 갑작스럽기도 했고, 어머니는 발이 넓거나 활발한 편은 아니었으니 당연하리라. 친척들과, 어머니의 적은 친구들을 맞이하며 수혁은 뻣뻣히 서 있었다. 아버지는 거의 빈소에 붙어있지 않았다. 어머니의 수술이 정해졌을 때도, 출장을 가 있던 작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모습을 봐오니 이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고, 다른 집안의 아빠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화목함을 중시하는 인간상인걸 알았을때 어린 수혁은 얼마나 놀랐던가. 이제는 그러려니 싶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진절머리가 났지만, 수혁은 자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걸 안 뒤에 생각을 그만두었다. 어딘가, 잔뜩 지쳐서 온 몸에 구멍이 난 기분이었다. 실제로 구멍이 났던건, 힘든 이식 수술을 시도했던 어머니였을텐데. 마음이 허하고 답답해 담배나 술을 잔뜩 하고 지쳐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그 둘다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손님들은 적어지고, 향이 피워진 빈 방에서 수혁은 눈을 붙이기로 했다. 잠들려고 하니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왔다.
"...여보세요."
"한 수혁 님이시죠. ㅇㅇ병원입니다. 한 은서 님의 보호자로 현재 등록되어 있으신데 입원 절차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그랬다, 아버지가 가까이 안 계셨던지라 어머니도 누나도 제가 보호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수술의 실패 후, 은서는 그 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먼저여서 신경쓰질 못했다. 걱정되었지만, 쇼크는 없었고 은서는 평범한 수술을 받았으니...회복 할 수 있을거라고 의사가 말했던 거 같았다. 그마저도 어머니의 사망 소식에 반쯤 잊어버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나는, 돌아올 사람이다. ...그렇게 어딘가 한쪽으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미웠다.
왜 너는 돌아온건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면서?
"한 은서 님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고, 다만 쇠약해져 있어 일주일간은 더 입원을 해 있으셔야 할 것 같아요. 간병인은 따로 두지 않으셔도 되겠지만 보호자 분께서 빨리 와주시는 편이 좋으실 것 같고..."
"예."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냥 자신을 놔줬으면 하는 기분이었다. 장례가 완전히 끝날때까진, 아마 병원으로 못 갈 거다. 자신이 상주나 다름없으니까. 발인식에도 못 오겠네, 누나는. 수혁은 그런 생각을 했다. 네, 네로 일관한 전화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 이후 끊겼다. 잠이 좀 깨서, 수혁은 제 옆의 팜플렛을 집어들었다. 상조에서 나눠준 장례절차 도우미 팜플렛이었다. 글자를 읽어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소용없었지만 그거라도 읽지 않으면...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질 것만 같았다.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타인의 탓을 하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까.
'전부 네 탓이야.'
소리나게 팜플렛을 찢고,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눈가가 대어진 곳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엄마가 누나만 예뻐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모두 누나만 예뻐하지 않았더라면, 누나만 잘나지 않고, 누나만 수술 적합자가 아녔더라면, 누나가... 누나가, 모두 누나 탓이니까... 누나가 실패한 탓이다. 어린애 같은 원망과 분풀이를 쏟아내며 수혁은 눈을 감았다. 몸이 떨려왔다. 이런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도, 그녀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는걸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더욱 더 미웠다.
===
"수혁아."
언제나 유행인 옷에, 잘 관리된 머리칼에다 화장도 하고 다니는 은서였는데 이렇게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는걸 보니 어색했다. 의식은 이제야 차렸댔지만 수술 후유증도 있고, 그 후로 아직 식사를 제대로 못해 파리한 티가 확 났다.
"오늘이 7일이더라고, 나 며칠이나 누워 있었던 건지..."
"삼사일쯤인가."
"응, ...그리고 엄마는?"
수혁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자신밖에 할 수 없다는 거에 대해서 끔찍히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아무 관계 없는 간호사가 툭, 하고 내뱉었다면 좋았을걸. 다들 회피해왔을게 분명했다. 악다구니가 받혀서, 화가 괜히 치밀어 올랐지만 기운이 없었다. 발인식을 하고 화장까지 끝내고 온 뒤였다.
"...가셨어."
"응? ...어디로?"
"수술, 실패했다고."
치기어리고 유치한 악이 숨겨진 말이었다. 좀 더 다정하고, 아픈 은서를 배려해가며 말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네 탓이다!
──네가 실패한 탓이야.
명백히, 상대를 탓하고 있었다. 수혁은 핏기 없는 그녀의 얼굴이 더욱 더 새하얗게 질리는걸 바라보았다. 눈물이 뚝, 뚝 흘러나오는 거에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수혁은 지금 제 얼굴을 그림자가 덮어주길 바랐다. 흐느낌은 더 커졌다.
"엄마...엄마, 흑...흐윽, 흑... ..."
팔목에 붙여진 링거 줄과, 낯선 약품과 소독의 향. 어제까지 내내 맡아 질렸던 향불의 냄새와 장례식장에 드리워진 죽음의 기운. 앞에 있는 여자가 낯선 사람이길 바랐다. 내가 더 이상 나로서 존재하지 않기를, 수혁은 빌었다. 어금니를 악물고, 주머니 안에서 주먹을 쥐고, 마음 속으로 몇번이나 욕설을 내뱉고.
"... ...."
울고있는 은서를 뒤로 하고 아무말도 못 한채, 도망치듯 나왔다. 수혁은 주먹을 꺼내, 손바닥 안에 있는걸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반지, 유품이라고...화장 전에 챙긴 것. 언제나 그녀의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 반지는 따뜻해져 있었고, 그는 홀린듯이 복도에서 그 반지 구멍 안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