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시나리오 [내일 또 만나]에 다녀온 KPC로 쓴 소설입니다. (시간은 시나리오 이전입니다)
따라서 시나리오의 진상이나 KPC배경의 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억은 쉽게 침전해간다.
즐거운 기억일수록, 그렇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기억일수록 다들 금방 잊어버린다. 행복도 기쁨은 쉽게 사라지는 감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채우는 것은 두려움과 분노와, 우울과, 권태일 것이라고.
하지만 그 침전해가는 기억을-감정을 끌어올려주는 것은, 다름 아닌 너였다. 나는 자각한 이후로부터 매일 밤 너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몇번이고 심해로 들어가 그 기억들을 끌어올려왔다. 다만, 너무 수면으로 데려오지는 않았다. 그러면 깨어있는동안 고통스러우니까, 적당히 중간까지 가져와서 기억해내고...추억하고, 소중히 바라보았다. 별 것 아닌 기억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저 수업시간에 조는 네 모습이나, 운동장을 달리는 네 모습이나,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는 네 모습, 나와 함께 교문까지 하교하는 네 모습일 정도니까...그렇지만 소중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이제는 그만둬야지, 라고 생각했던건 수험 때였다. 네가 도쿄로 진학하는걸 알게되자 그날은 돌아와서 일기를 썼다. 우리는 계속 이 마을에서 살거란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는게 보였다. 네가 상경해서 혼자 살 수도 있겠지만... 별로 떠나보내고 싶진 않구나. 어쩔 수 없었다. 그날따라 너와 함께 누워서 별을 보고 싶었지만 3학년이 된 이후로 부활동은 줄어든 때였다.
그래서 나는 너를 포기하기로 했다. 침재되어가는 기억들을 그대로 놔두기로 하고, 너와 조금 덜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다른 관심사도 둘러보았다. 공부에 집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여름의 햇빛같은 너를, 어딘가의 별을 닮은 너를...놓을 수가 없었다. 제멋대로, 나는 매일 다시 심해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눈물을 흘려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냥 가볍게 흘러가는, 바람같은 녀석이면 좋았을텐데...
절대로 '너와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거야.'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너를 만난 것에 즐거웠고, 분명 행복했다. 좋은 친구였으며... 나는 이 정도로 만족했어야 했다. 인간의 죄악은 욕심이며 호기심이다. 저 웃음이 온전히 내 것이 되길 원했을 때, 저 가벼운 발걸음이, 명랑한 목소리가 내 것이 되길 원했을 때.
네게 아냐, 아오키 미키히사.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읉조렸다.
네 것이 아니야.
그리고 세상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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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약속이다. 과연 맞출 수 있을까? ...내일을 볼 수 있을까?]
나는 네 시체를 끌어안으며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너는 이렇게 되어서는 안되었다. 우리는...이곳은, 이렇게 되어서는 안되었다. 평온히 지내오던 하루하루가, 갑자기 무너졌다. 네가 와서 기쁜 엊그제는 지금 지옥도로 변해있었다. 피 냄새가 자욱했다. 나는 네 온기를 잃지 않으려고 끌어안았다.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즐거운듯이 무서운 미소를 지었다. 인간이 아닌게 분명했다...
침착해, 아오키.
모두 괜찮을거다, 다시 시작하면...할 수 있을거다. 내일, 아니. 다시 엊그제로 돌아가면 닥치는대로 자료를 수집하고...네가 오면,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저녁에는 매일 조사를 하면 된다. 잠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수험때 잔뜩 그래왔다.
"...슌."
나는 네 머리칼을 조심스레 쓰다듬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이 이상은 안돼...라는 마음에 그만두었다. 너를 꼭 내일로 데려가줄게. 다짐하듯 속삭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내일로 데려갈게...
잠 든 것 같은 모습의 슌은 웃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신 웃어보였다.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한 웃음이었다. 어릴적에는, 거의 웃지 않는 애였으니까... 네 웃음을 볼 때마다, 돌려주고 싶어서 돌아와 연습했던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