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 마기카로기아 기반 방문자 PC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입니다.
다녀온 세션에 대한 스포는 없습니다.
원작 세계관설정에 대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카와카미 군!"
료우키는 자전거를 타고 하교중 자신을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한쪽으로 묶어 내린 미나미 씨는 근처 구립 도서관의 사서였다. 그녀와는, 작년 겨울에 만났었지. 굳은 얼굴로 다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안녕하세요, 미나미 씨. 지금 업무시간 아니에요? 휴가신가?"
"아니, 봐, 날씨가 요근래 안좋잖아. 빨리 퇴근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어. 학교에선 별 말 없니? 파도도 그렇고..."
"아, 확실히 그랬죠. 학교 공지도 내일 뜰 거 같긴 해요. 일단은 정상 등교지만요."
"내일이라니 너무 늦네, 몸 조심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그녀와 갈림길에서 헤어진다. 요즈음 카가카이 시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괜히 낮에 우중충해지질 않나, 늦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주변 공기가 싸해지고 우박이 내린다. 파도도 평소보다 거세고, 갈매기들도 괴상한 소리를 낸다.텔레비젼 뉴스에는 딱히 별 말이 없어서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혹은 무언가 이미 일어났다.
세계멸망? 외계인의 습격? 그런 걸 믿기에는 허무맹랑하긴 했지만 아무튼 매일 귀가해선 웹사이트 등으로 괴이현상에 대해 나름 조사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전부 도시전설이었을 뿐. 그는 오늘도 저녁 식사를 혼자 하다가 거센 바람이 창문을 뒤흔드는 소리에 움찔거렸다. 단순한 바람이 아닌 거 같았다... 무언가 거센 충격을 주는 소리. 인간으로선 낼 수 없는 힘을, 어딘가에 쏟아붓는.
"...어?"
또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어디선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바람이나 비 때문에 근처 시설물이 넘어진 것 같았다. 이런걸 빨리 치우지 않으면 더 큰일이 난다. 료우키는 우비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문 밖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퇴근하실것도 걱정이 된다. 이런 날씨...매일 매일이 급작스럽다. 지구 온난화 때문일까? 이번 여름도 죽도록 더웠지.
"윽... 여긴가."
근처 거리에 세워져 있던 입간판들과, 외부에 설치되어 있던 조명등이 전부 부숴져 있었다. 단순히 바람만으로 넘어져 이렇게 되었다고 하기엔 괴상했다. 목장갑을 끼고 오길 잘했다며 일단 료우키는 파손된 간판 조각들을 구석으로 치웠다. 그리고 조명을 보려는 순간, 자신의 전신을 억누르는 현기증에 비틀거렸다.
"뭐, 뭐야? 이거...?"
온 몸을 한번 비틀고, 쥐어짜내어 제 정신을 유지 못하게 하는 감각. 처음 맛보는 고통은 동시에 무언가와 연결된 낯선 느낌도 주었다. 제 조그마한 몸 안으로 감당하지 못할 흐름이 쏠려들어오는, 형용할 수 없는 현상에 그저 료우키는 머리를 쥐고 벽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신음과 함께 격통 속에서 눈을 겨우 뜨자, 제 주변의 익숙한 마을의 광경이-밤하늘과도 같은 색에 물들어져 우주공간 비슷한 곳으로 변해있다는 것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어둡고, 움직인다. 공간은 빛을 내뿜고 동시에 삼키며 멈추어진 대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질적인 감각에 료우키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정말 우주공간에 내떨어진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우주복도 하나 없이. 그가 눈알만 덜덜 떨며 굴리자, 눈에 들어오는게 단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빛의 궤적을 이루며 싸우는 전투.
그것은, 세계의 반대편에서 진리에 다다른 자들.
-마법이라는 단어 이외로는 표현할 길이 없을, 광경이었다.
[마법명, <푸른 장미의 거짓된 노래>-마법전 입회자로 지원합니다. 방어 개시.]
[마법명, <허무한 업화의 지배자>가 승인한다. 최대 마력 해방! ]
꿈과, 짐승과, 힘과, 노래와, 어둠이 뒤섞인다.
아름답고, 참혹하며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의 움직임과 영창 하나하나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상대는 거대한 괴수 모습이었다. 물로 이루어진 괴수는 자신을 상대로 하는 자들에게 모습을 바꾸어가며 마구 반격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거대한 불이 괴수의 한쪽 다리를 부수고, 동시에 어디에선가 나타난 장미덩굴이 괴수를 옭아맸다. 괴수는 마지막까지 발악했다. 어마무시한 힘이 여기까지 느껴져 와, 료우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 광경은 뭔지, 저 존재들은 뭔지 하는 의문조차 들지 못했다. 자신은 이공간에 들어온 유일한 이질물이었다.
-크아...아아아... 아...
괴수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묶인채로 소리 지르다가 고통스러운지 두 인영으로부터 도망가려는 그 동작이, 어째서인지 료우키의 눈에는 슬로우모션처럼 뚜렷히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 괴수가 제 쪽을 바라봤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 죽는건가.
죽음의 때는 이렇게나 쉽게 인간에게 들이 닥치는 건가, 짧은 찰나에도 그런 덧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한발짝, 한발짝, 그렇게 점차 제 쪽으로 괴수가 달려온다. 인영들도 괴수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았는지 당황한 얼굴이다. 멀지만, 똑똑히 보인다.
[어째서 우자가 여기에? 스펠바운드는 분명 제대로 전개했을텐데.]
[...우자가 아닐지도 몰라. 여기에 있다는건 분명-]
그들이 내뱉는 말들도, 귀에 웅웅 울린다. 의미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제 곧 괴수가 자신을 집어삼킬 듯 가까이 다가와 있다. 료우키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눈부신 은색의 빛이 그를 감싸안았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괴수에게 짓밟혔을 료우키의 몸은 빛과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 빛의 고치에 둘러싸인 료우키의 눈은 점차 흐려졌다.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자신의 이름이 아닌, 영혼으로.
[■
■
■...
■
■...]
고치 안에서 방울방울, 거대하게 차오르는 푸른 기포에 휩싸여 공중에서 료우키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수는 그 빛이 너무나도 눈부신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보이지 않는 거센 충격에 멀리 나자빠졌으며, 이 광경을 모두 본 두 인영도 입을 벌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의 남성과 은빛 머리의 여성이었다.
[...<방문자>였지, 방금 기운?]
[각성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금서>의 영향이 트리거가 된거야.]
[어서 와, 【료우키】.]
"뭐야, 너는? ...여기는 어디야? 아까 그건?"
콜록대며, 쫄딱 젖은 모습이 되어 정신 차린 료우키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흰색의 공간. 그저 무(無) 뿐인 공간. 자신을 집어삼켜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까봐 인간의 두려운 본능이 샘솟았다.
[너에게는 힘이 주어졌어. 마법사의 길을 걸을 자격이 있어.]
"...마법사?"
[운명과 세계를 개변하는 자─불멸과, 영생과, 지혜와, 근원과, 예지를 얻지만 세계로부터 거부받는 자.]
"난...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목소리는 여러겹으로 겹쳐 들리는, 소년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킥킥 웃었다. 흰 공간 안에 하나의 물체가 갑자기 나타났다. 고풍스러운 테두리가 달린 거울이었다. 별안간 거울은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힘을 얻으면, 어떻게 쓸래?]
"...힘?"
[모든지 할 수 있는 힘. 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쓸래? 누군가를 벌해줄래? 맘대로 말해줘.]
거울로부터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료우키는 천천히 거울로 다가갔다. 표면에는 역시 자신이 비춰지고 있었다...물에 젖어 안쓰러운 모습. 그는 표면을 매만졌다. 차가운 수은의 유리가 그의 손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야하지 않겠어?"
[우자답구나. 아니, 너 다워. 역시 맘에 들어.]
"모르는 거 투성이네, 그냥 집에 있을걸..."
[안심해, 료우키. 아니─「거울에 비추는 은색의 바다」. 너의 신념을 잃지 말도록 해, 어떤 것이 네 적이더라도-심지어 세계일지어도, 내가 있다면 너는 두려워 할 필요 없어.]
"너는 누군데?"
거울속의 자신은 눈이 푸르렀다. 이상하다, 원래 제 눈은 평범한 진갈색일텐데... 거울 안의 자신은 계속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혀는 붉어서, 아담과 이브를 꾀는 뱀과 같은 형상이다.
[나는, 카와카미 료우키(川神兩器)]
"나는 카와카미 료우키(川上兩木)..."
[「거울에 비추는 은색의 바다」.]
"... ..."
료우키는 그 괴상하고 긴 명칭이 자신을 가르키고 있다는 것을 어쩐지, 깨달아버렸다. 그러자 공간은 또 돌변하였다.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어릴적부터-그와 함께 해 왔던 바다의 풍경. 다만 색은 찬란하며 온화한 은색. 마치 한여름밤의 밀키웨이같은.
[닻을 내리고, 항해를 하자.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마법에 닿아버렸다면─어쩔 수 없잖아?]
함께 나쁜 장난을 치자는듯이, 웃는 거울 속 상대를 보며 물에 잠긴채 료우키는 말했다.
"진짜, 그건 어쩔 수 없네."
"정신을 차렸군."
다시 눈을 뜨자, 눈 앞에 보인건 익숙한 거리의 광경...이전에 날이 갠 하늘과 낯선 남성의 얼굴이었다. 놀라서 개구리처럼 튀어오르듯 몸을 일으키자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러서 팔짱을 낀다.
"<방문자>를 거둬본건 이게 처음이야. 아무튼, <학원>부터 곧 안내해주지. 그 녀석은 보고하러가서 나 혼자잖아..."
"학원...이요?"
희뿌연 시야가 맑아지니 이 남자가 어디선가 본 것 같아, 료우키는 눈을 꿈뻑거리다가 알아챘다. 아까 그 우주같던 공간에서 움직이던 인영 중 하나였던 거 같다고 혼자 깨달았다. 머리색과 의복은 좀 다르지만... 남자를 빤히 바라보자 남자는 텅 빈 눈길을 돌린다.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난거 같은데, 아직도 알 수 없는게 한가득이다.
"네 마을에서 일어나던 마법재앙 사건은 마무리했다. 가자."
"예에... ...음, 자전거 가져올까요?"
쫄아서 바보같은 료우키의 말에 결국 남자는 그를 차갑게 쏘아본다. 움찔 할 정도였다.
"지부로 가서 포탈 타고 갈거니 중간에 이경으로 빠지지나 마."
이후로 마법사들은 다 이런가, 라는 오해를 료우키가 풀기까지는 조금 오래 걸렸다. 엽귀 <허무한 업화의 지배자>는 상냥한 성격이 아녔고, 그를 따라 <학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료우키는 계속해서 그의 투덜거림을 들어야만 했지만 어째 발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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