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려."
여자가 낮게 읉조리며 말했다.
토오야는 자신을 낳아준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핏발이 서고 푸석푸석한 피부와 머리칼. 억지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한 뒤 남편이 감옥에 간 사람으로서 느끼는 그 감정은 어린아이가 모조리 알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무거웠다. 그래서 토오야가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방 구석에서 눈물을 훌쩍이며 흘리는 것 뿐이었다. 취한 여자는 이쪽으로 술병을 던졌다.
정강이가 욱신거렸다. 어제 동급생에게 맞았던게 또다시 떠올랐다. 뭐라고 했더라, 기분나쁜 범죄자의 자식.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녀석. 벌레, 괴물, 쓰레기... ...학교에는 가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낡고 어두운 집 또한 지옥이었다. 전기와 가스도 끊기고, 식사도 챙겨주지 않았다.
침잠한 검은 눈으로 토오야는 지저분한 벽을 타고 기어가는 다리가 많은 벌레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내가 진짜 벌레였으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생각했다. 죽기는 무서웠고, 살아가기는 고통스러웠다. 밖으로 나가면 자신을 보는 수많은 눈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넌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인간말종의 자식이야.
그러므로 너도 똑같아.
...토오야는 눈을 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짓이겨버리는 상상을 시작했다. 엄청한 괴물이 되어서, 손은 갈고리가 되고 몸은 불타오르며 그런 사람들을, 악마들을 단숨에 해치우는-
-
아파. 죽을만큼 아파. 아니, 죽을거같아. 아파. 아파. 아파.
소년은 모든걸 집어삼키는 불길 안에 있었다. 자신의 몸은 차에 깔려선 타오르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누가 여기로 날 밀었더라.
모르겠어.
내가 왜 죽어야해?
난...
그렇지만 잠시 의식이 끊겼다가, 몸 안의 무언가가... ...움찔거리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뼈와 근육이 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제 몸은 재생과 타오름을 반복했다. 말도 안 되는 기묘한 변화를 바라보다가 토오야는 그저 죽음을 향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몸의 안쪽에서 무언가 태동하고, 깨어나는 감각에 휩싸여 억지로 기괴하게 비틀려 일어났다.
그것은, 각성이자 괴물의 탄생이었다.
-
"...아."
깔끔한 방 안, 폭신한 이불. 단정한 향. 또다시 오래전의 꿈을...악몽을 꿨다며 토오야는 눈가를 닦았다. 이제 거의 8년을 넘어가는데 아직도 이런 것만은 똑똑히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부추기는 욕망의 일종이란걸 잘 알았다. 너는 멈춰서는 안돼. 이 세계에 복수하는거야, 그리고 모두 죽인 뒤 네 신세계를 만드는거다.
그러니까 과거를 잊지 마.
"-일어났습니까."
흠칫, 하고 고개를 돌리자 저 편에서 미소짓는 남자가 있었다.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토오야는 자신이 그의 방에 왔다가 부주의하게 자버린 것에 이를 꽉 깨물었다. 요즘 계속 이런 모습만 보이는거 같아, 맘에 안 들었다. ...그가 맘에 든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돌아갈거야."
"잘 자던걸요, 잠꼬대까지 하면서."
짜증이 나 남자를 향해 한대 또 주먹을 내지르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악몽을 꾼 뒤라 힘도 없었기에 이불만 훽 잡아 올려 덮었다.
남자는 보아하니 오늘도 자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았다. 뒤척거리던 토오야는 그의 침대 위에서 변덕스레 일어나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일어나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재워줘야 잘 겁니까?"
"시끄러워. 알아서 잘 거야."
"응석이 심하군요."
그는 토오야를 또다시 눕히고 옆에 앉아 재우기라도 하듯이 내려다보며 도닥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놀리는거란걸 알면서도 토오야는 씩씩대다가 이내 검붉은 눈을 감았다.
옆으로 누워 제 한쪽 앞머리가 사르륵, 내려가 제 쭈글쭈글한 얼굴 화상 흉터를 다 가리지 못하고 드러냈지만 맘대로 봐라, 싶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증거였다. 괴물을 바라게 된 날의 시작이었으며, 푸른 불꽃이 자신을 지배한다는 명백한 나타냄이었다. 사람들만 안 만나면 좋을텐데...그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스크를 쓰려다 갑갑해서 벗어던진 뒤로는 그냥 지내고 있다. 이런 외향으로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혐오한다면 그게 더 낫다.
...눈가를 살며시 매만지는 손길이 느껴져, 토오야는 부디 그가 아니길...자신이 잘못 느낀거이길 빌며 잠에 또다시 빠져들었다.
-
사간은 그가 죽은듯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며 속삭였다.
"아빠, 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는 일어나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