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토코 군!"

유즈루는 편의점에서 설렁설렁 나오다가 일주일 만에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아마 저쪽 앞에 걸어가고 있는걸 보니 자신보다 먼저 계산하고 나온듯 했다. 손에는 그도 자신과 똑같이 편의점 비닐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좋은 저녁~ 오늘도 저녁 사가는건가? 뭐 샀어?"
"...안녕하세요. 시노하라 씨."

가까이 다가오자 토코 타카하루는 조용히 인사하고 그 말에 뭔가 대답하려다 그저 자신의 봉투를 슬쩍 들어본다. 반투명한 봉투 안에는 도시락이 들어있었고, 유즈루는 어쩐지 그와 자신이 같은 도시락을 골랐다는 거에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요즘은 정말 가정폭력 없이 잘 지내고 있는걸까...예전에 공원에서 갑자기 팔목이 붙들려졌을때는 놀랐었지. 그를 볼 때마다 조금 씁쓸함이 느껴지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토코 군 만날 줄 알았으면 도시락 안 사고 같이 식당 가서 먹자고 할걸."
"...아닙니다. 저번에도..."

슬쩍 고개를 숙여 저번에 저녁을 사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그를 보며 자연스레 미소지었다. 그러다가 비닐봉투를 쥔 그 손 위에 손을 겹쳐 잡곤 결국 말했다.

"도시락은 내일 아침으로 먹고, 괜찮다면 어때? 이번엔 또 다른 맛집으로 갈거라고."

타카하루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유즈루는 개의치 않았다. 원래부터 자신은 개의치 않아했던 쪽...
...
...
어라?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며 시노하라 유즈루는 어린 학생과 함께 단골 식당으로 들어갔다. 친구중에 이런 성격인 애가 있었던가? 머릿속으로 한명한명 떠올려보았지만 그런 애는 없었다. 분명.

***

"여기 맛있는 술도 파는데, 아쉽게도 못 사주네. 토코 군이 어른 되면 바로 축하주 사주러 올게."

...그런 말을 했더니 표정이 어땠더라, 감사합니다. 라고 한거 같지만... 어쩐지 조금 슬퍼보였다. 왜일까? 어른이 되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긴 하다. 뭔가 병이라도 걸린걸까. 빚독촉이라도 매일 오는걸까... 그 무표정 뒤의 감정이 읽힐것도 같은데, 어쩐지 어려웠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절망도 슬픔도 괴로움도 아니라 그냥 토코 타카하루라는 존재는 벽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것으로부터.

유즈루는 자신이 그에게 생판 남이자, 몇번 만날 뿐인 지인이라는 자각을 잘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해줄 수 있는건 이게 전부였고, 소년은 별 잡담도 없이 지난 날과 똑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비닐봉투를 든 채로 밤 거리를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쩐지...어쩐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놔두면 안될거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 ...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서늘한 눈빛은 이내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유즈루는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토코 타카하루는 잡혔던 손을 쥐었다 폈다. 뜨거운 그 열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자신이 차가워서 그런걸까. 다음엔 안 만나면 좋겠다... 라고 문을 열어 어두운 원룸 안으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걸 알았다. 첫 만남 이후로 더 만나는 일이 있었던게 잘못이었다.

모순적인 마음이 자신의 맘 속에 이미 똬리를 틀고 자리잡았다.
그래서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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